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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자 요새도 기타 치지? 자, 피크 좀 가져가라.”
인터뷰를 마친 기타리스트 최희선이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시그니처 피크를 한 움큼 건넸다. 약 1㎜ 정도 되는 하얀색 피크에는 그가 최근 발매한 솔로 1집 <어나더 드리밍(Another Dreaming)>의 이름도 써져 있다.
최희선은 1993년부터 현재까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로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을 살고 있다. 조용필의 기타리스트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지난 2011년 4월에 게리 무어를 추모하기 위해 열두 명의 초절정 기타리스트가 출동한 ‘12G神의 송가’를 취재할 당시 명성으로만 접했던 최희선을 처음 만났다. 수많은 베테랑 기타리스트들이 선배로 ‘모시는’ 최희선이었지만, 실제로 보니 상당히 젊어 보여 나이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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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유니온프레스 전성규 기자 |
당시 공연 리허설을 지켜보는데 김도균(백두산)이 기타를 치자 음악 감독을 맡은 최희선은 “도균이 기타소리 크다. 조금 조절해”라고 말했다. 김도균의 호쾌한 연주가 마냥 좋기만 한데 최희선의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최희선은 이렇게 말했다. “기타소리보다 전체적인 음악이 아름다워야 사람들이 다시 보러올 거 아냐?” 그때 최희선이 조용필의 기타리스트로 오랜 세월 함께 했는지 비로소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최희선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처음 발표한 앨범 <어나더 드리밍>에는 그가 이제까지 갈고 닦아온 기타 연주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론 완벽주의자인 최희선에게는 부족하겠지만 말이다. 이달 13일 용산 아트홀에서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을 갖는 최희선을 만났다.
Q. 최희선 자신의 이름을 이름 걸고 앨범 낸 건 <어나더 드리밍>이 처음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첫 명함판을 새긴 소감이 어떠신가요?
“굉장히 감격스럽기도 하지만, 내 성격 탓인가? 아쉬움이 많아. 난 아직도 배가 고파. 지금도 녹음을 다 다시하고 싶은 생각이야.”
Q. 앨범의 완성도가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셨나요?
“아니, 마음에 안 든다기보다는 더 잘하고 싶어서 그런 거지. 곡마다 각 장르가 가진 스타일에 맞게 녹음이 잘 이루어진 것 같아. 12곡에 내가 좋아하는 색깔을 담으려 하기 보다는 최대한 다양한 기타음악을 들려주려고 했어.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연주한 것처럼 들리게 하려 했지.”
Q. 앨범을 들어보면 8비트 로큰롤부터 펑크(Funk), 마이너 블루스 등 다양한 스타일이 담겨 있습니다.
“권기자가 듣기에 그중에서 어떤 게 좋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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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유니온프레스 전성규 기자 |
Q. 다 좋지만 그 중에서도 ‘뱀’, ‘파워게이트’와 같은 호쾌한 로큰롤이 특히 잘 맞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지. 그런 곡들이 날 대표할만한 곡들이야. 그 외에 ‘사운드 오브 문(Sound Of Moon)’은 에릭 클랩튼처럼 잔잔하고 심플한 블루스 곡이다. 동물농장에서는 실제로 우리 집 강아지들이 피처링을 했어. ‘여명의 강’과 같은 곡은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거의 처음 시도되는 곡이 아닌가 해. 통기타로 잔잔하게 시작해서 후반에는 주다스 프리스트와 같은 완전한 헤비메탈 기타가 나오니까.”
Q. 심플한 편성의 파워풀한 곡들이 궁금합니다. ‘뱀’은 어떻게 만들게 되셨나요?
“‘뱀’은 앨범을 시작하는 첫 곡이라 강력한 리프로 했어. 누가 뭐래도 록 기타리스트는 리프가 대명사니까. 일단 리프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평범한 멜로디를 쓰기는 싫더라고. 그래서 펜타토닉 스케일이 아닌 다른 스케일을 사용했어. 만들고 나니 뱀이 기어 다니는 느낌의 멜로디더라. 그래서 제목을 ‘뱀’이라고 지었지.”
Q. ‘파워게이트’는 심플하고 호쾌한 매력이 일품입니다. 정통 로큰롤이라고 할까요?
“AC/DC의 앵거스 영이 백킹을 하고 반 헤일런이 솔로를 한 것 같지 않나?”
Q. 말씀하신 두 연주자 외에 마이클 쉥커도 떠올랐습니다.
“기타리스트 중에 그 연주자들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어?”
Q. 그 외에 애착이 가는 곡들이 있다면요?
“총 12곡 중에 타이틀곡을 정해달라고 하는데 차마 못 정하겠더라. 모든 곡이 다 애착이 간다. 한 곡만 꼽으라는 것은 12명의 명의 친자식 중에 한 명만 고르라는 것과 같아. 애들이 좀 커봐야 아는데, 이제 갓난아이라서 어떻게 대답할 수가 있겠는가? 아직 산후조리원에서 울고 있는데.(웃음) ‘비연’, ‘리멤버(Remember)’는 만든 지 오래된 곡이다. 의외로 젊은 팬들이 ‘비연’을 좋아하더라. ‘비연’은 한국적인 가요 스타일의 곡이라 할 수 있다. 해외 록 연주곡과는 감성이 달라.”
Q. 지난 2011년 게리 무어 헌정공연 ‘12G神의 송가’ 때 처음 뵈었을 때에도 솔로 앨범을 기획 중이라고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앨범 발매가 상당히 늦어졌습니다.
“원래는 작년 가을에 발매가 됐어야 하는데 꽤 늦어졌어. 내 욕심 때문에도 늦어졌지만 용필 형님 19집 작업을 하면서 더 늦어졌지. 본격적인 작업은 2011년 12월에 시작했어. 내 성격 상 앨범 작업 하다가 중간에 다른 일을 하지는 않고, 이것만 잡고 꾸준히 작업한 것이 1년 4~5개월 정도 됐다.
Q. 앨범에 보컬 곡이 없이 전곡이 연주곡입니다. 주변에 아는 가수들이 상당히 많으시지 않나요? 마음만 먹으면 올스타들을 데리고 올 수 있었을 텐데 왜 연주앨범으로 만드시게 됐나요?
“기타리스트로서 연주앨범을 만들어보고 싶었어.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는 가수들이 다 앨범에 참여해준다고 했었지. 이미 오케이 사인까지 다 받은 상태였어. 보컬을 쓸지 말지에 대해서는 끝까지 고민을 했다. 그런데 노래를 넣으면 온전히 내 음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배철수 형님이 많이 말렸지. 반드시 보컬이 있는 곡을 해야 한다고 하시더라. 그런데 그 말을 들으니 더 오기가 생기더라고. 기타연주로도 얼마든지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데 말이야. 그래서 철수 형님이 그 얘기를 하신 날에 무조건 100% 연주앨범으로 하기로 확 결정해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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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유니온프레스 포토DB |
Q. 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멤버들인 이종욱, 최태완, 이태윤, 김선중을 비롯해 한국 최고의 연주자들인 김희현, 신현권, 이건태 등이 참여했습니다. 이와 함께 이중산, 엄인호 등 기라성과 같은 기타리스트들이 잼세션으로 함께 했는데요.
“선배님, 후배님들이 흔쾌히 참여해줘서 너무나 감사할 일이지. 마지막 곡인 ‘잼 페스트(Jam Fest)’는 동시녹음으로 했어.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연주자들이 그런 방식으로 녹음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곡이 10분이 넘는데 만약에 중간에 누가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잖아. 그 곡은 특별히 DVD로 촬영도 했어.”
Q. 기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지요. 몇 살 때 기타를 처음 시작하셨나요?
“4살 때부터 기타를 가지고 놀았지. 초등학교 4~5학년 때부터는 벤처스의 ‘파이프라인(Pipeline)’, 애니멀즈의 ‘하우스 오브 라이징 선(House Of Rising Sun)’을 연습했다.”
Q. 굉장히 어린 나이부터 기타를 만지셨네요.
“아버지가 극단에서 기타를 치셨어.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기타연주를 보고 자랐지. 언젠가 아버지가 큰 도회지에 다녀오시면서 장난감 같은 기타를 사다주셨어. 초등학교 때부터는 통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프로 뮤지션으로 활동한 것은 1977년 스무 살 때지. 무교동, 이태원에서 밴드 활동을 했지. 미8군이 끝물이었고, 강남이 없던 시절 이야기다.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80년대로 접어들면서 시작한 ‘최헌과 불나비’였어.”
Q. 얼마 전에 작고하신 최헌 선생님과는 각별한 사이로 알고 있습니다.
“각별했지. 그때 헌이 형은 정말 멋있었다. 헌이 형과 용필이 형은 친구 사이지만 스타일은 정반대였어. 헌이 형은 급한 게 없고 여유가 있었어. 반면에 용필이 형은 항상 꼼꼼한 스타일이시지.”
Q. 신중현 선생님과도 함께 활동을 하셨는데요. 어떻게 인연이 닿으셨어요?
“신중현과 뮤직파워 시절에 함께 했다. 신중현 선생님이 대마초 사건으로 한동안 활동을 못하시다가 80년대 초에 다시 활동을 시작하실 때였지. 봉고차에 멤버들을 다 태우고 의정부 클럽에서 연주를 하곤 했어. 그때는 지금의 홍대 클럽처럼 밴드들이 연주할 곳이 없었잖아. 내가 군 입대 하는 날 새벽 4시까지 신중현과 뮤직파워로 연주를 하고 머리 빡빡 깎고 군대에 갔다. 그때 드럼을 연주했던 백두산의 한춘근 형이었어.”
Q. 그 당시 한춘근 선생님 드럼이 그렇게 대단했다고 이야기 들었습니다.
“아주 센세이셔널하고 뛰어난 연주였지. 정말 화려했어. 그런데 같이 맞추기는 어려운 드럼 연주였어.”
Q. 김기표 선생님이 스승과 같은 분이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분에게 정말 많은 걸 배웠지. 기표 형님을 만나기 전 어렸을 때부터 그 분의 연주를 굉장히 좋아했어. 70년대 중후반에 기표 형님이 우리나라에서 훌륭한 기타 세션을 많이 하셨어. 다른 연주자들이 8비트도 제대로 못할 때 형님은 16비트를 제대로 구사하셨고, 재즈 록을 가요에 거의 처음 접목하신 분이야. 당시 사랑과 평화가 밴드로 유명했는데 그 이전에 기표 형님은 녹음실에서 편곡자로 이미 획기적인 연주를 하셨었어. 최헌의 ‘구름나그네’, ‘앵두’ 등 발표한 곡마다 기타 간주가 지금 들어도 정말 대단해. 70년대 후반 트로트가 유행하던 때였지. 특히 ‘앵두’의 16비트 연주도 대단했고 ‘오동잎’ 기타 솔로는 꼭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를 듣는 것 같아. 그래서 이 연주자는 누굴까 궁금했는데 그게 바로 기표 형님이었어.”
Q. 김기표 선생님과는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내가 기표 형님을 굉장히 동경하고 있었는데 그 분이 헌이 형이랑 함께 날 찾아와서 우리 팀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제안하셨어. 젊은 기타리스트를 찾으려고 전국을 돌아다니셨다고 하더라. 그래서 ‘기표 형님 계신데 감히 제가 어떻게 기타를 칩니까’라고 했더니 형님께서 ‘난 이제 머리숱도 별로 없고 뒤에서 건반이나 칠거야’라고 하시며 웃으시더라. 그래서 ‘불나비’를 시작하게 된 거지. 그때가 80년대 초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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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유니온프레스 포토DB |
Q. 조용필과는 언제 만나셨죠?
“원래는 80년 초에 제1기 위대한 탄생이 해체됐을 때 내가 기타리스트로 들어갈 뻔 했다. 하지만 난 불나비로 활동하게 됐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결정을 잘 한 것 같아. 불나비에서 음악을 많이 배웠으니까. 물론 그때 위대한 탄생에 들어갔어도 많이 배웠겠지만 방송 출연 때문에 얼마나 바빴겠어? 그때는 내가 연주자로서 정체성이나 주관이 서지 않았을 때였거든. 그때는 기표 형님 밑에 들어가 음악을 차근차근 배우길 잘 한 것 같아.”
Q. 그러면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는 어떻게 정식으로 가입하게 되신 거죠?
“나는 불나비 이후에 프로듀서, 작곡가, 세션맨으로 바쁘게 활동했지. 너무 많이 해서 뭘 연주했는지 다 기억은 하지 못하는데 편곡한 곡은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편곡한 것만 2,000곡정도 된다. 김수철, 김태화, 심신 등과 자주 연주했고, 박진영 앨범에도 내가 기타를 쳤더라. 그러던 중에 승철이가 나를 찾아왔어. 승철이가 위대한 탄생 같은 밴드를 하고 싶어 했거든. 그때 승철이는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를 막 히트시킨 떠오르는 별이었지. 당시 가수가 자기 밴드를 만들려면 큰 돈이 들었기 때문에 승철이 소속사 사장이 날 찾아와서 말려달라고 했어. 그런데 이승철이 밴드를 하고 싶은 열정이 대단했다. 그래서 나, 김희현, 이태윤, 최태완으로 이루어진 ‘이승철과 미래로’가 탄생하게 됐지. 그러다 팀이 갈라지려고 할 때 용필이 형님과 연결이 됐다. 그때까지 용필이 형님은 일본인들로 이루어진 ‘괜찮아요’,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뮤직파티’ 등을 하다가 밴드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었던 시기였어. 결국 미래로 멤버들이 1993년 봄에 조용필과 새롭게 의기투합하게 된 거야. 난 그때부터 만 20년 동안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으로 활동하고 있지.”
Q. 조용필의 기타리스트로 산다는 건 어떤가요?
“단 한시도 방심해서는 안 되는 자리. 올림픽 국가대표처럼 태릉선수촌에서 항상 담금질하는 자세로 준비해야 하지. 두 번이 없어. 한 번에 100% 보여 줄 수 있어야 하지. 공연을 다시 할 수는 없는 거니까. 한 번에 100을 해내는 능력이 없으면 조용필과 할 수 없어.”
Q. 조용필과 오랜 세월 함께 활동하셨는데요. 어떤 점이 그렇게 다른 가수와 다르던가요? 연습을 할 때 많이 혹독하신가요?
“확실히 다르지. 독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 나도 독하니까. 모든 게 철두철미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나와 같아.
Q. 서로 닮으셔서 오래 하실 수 있으신 건가요?
“닮아서 부딪힐 수도 있겠지만 서로를 더 잘 이해 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지.”
Q. 몇 명을 꼽기 어려우시겠지만, 가장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를 말씀해주십시오.
“꼽기 어려지. 앵거스 영, 반 헤일런, 게리 무어 등 여러 명 말할 수 있겠다. 난 존 맥러플린을 특히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 보통 록을 하다가 재즈로 넘어가는데, 난 록을 좋아하기 전에 먼저 재즈 록이 귀에 들어왔어. 그래서 기표 형의 연주를 좋아했던 것 같아. 그런데 지미 헨드릭스나 게리 무어 같은 록 기타리스트들 보면 록 외에 다른 장르를 기본 이상으로 하지. 그런 것은 지금 음악을 배우는 어린 학생들도 알고 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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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유니온프레스 포토DB |
Q. 요새는 어떤 음악을 주로 들으세요?
“될 수 있으면 나보다 젊은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으려고 애써. 라디오헤드, 뮤즈. 마룬 파이브도 듣지. 요새 젊은 친구들은 기타를 어떻게 연주하나 모니터를 하지. 항상 최신의 감각을 유지해야 하니까.”
Q. 한국을 대표하는 12명의 기타리스트들이 출연하는 ‘12G神 콘서트’도 계속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 2회 공연 동안 최이철, 김광석, 이중산 등 선배님들, 그리고 최우준, 박주원 등 까마득한 후배들까지 함께 연주하시면서 매우 즐거우셨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좋았지, 우리 기타리스트들의 축제를 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야. ‘12G神 콘서트’에는 최고의 연주자들이 아니면 못 들어와. 과거의 명성만 가지고 있어도 안 되고 지금도 실력을 유지하고 있어야 돼.”
Q. ‘12G神 콘서트’에 함께 한 후배들 중 특별히 칭찬하고 싶은 연주자가 있으신가요?
“함께 무대에 오른 후배들은 다 칭찬하고 싶지. 그 중에서 특히 이현석은 인정해주고 싶은 부분이 있어. 그 속주를 얼마나 연습했을까? 정말 연습량이 대단할거야.”
Q. 4월 13일 용산 아트홀에서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을 하시는데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20대 초중반의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 팀을 이뤄서 연주를 하게 돼. 기본적인 5인조 편서에 코러스, 브라스 밴드가 나올 거야. 1부에서는 <어나더 드리밍>에 수록된 연주곡들을 앨범 순서대로 들려줄 계획이다. 2부에서는 내 마음 속의 베스트 곡들인 퀸, 오지 오스본 등을 연주하고, 진짜 하이라이트는 앵콜에서 등장할거야.” |